진영논리와 진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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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79회 작성일 23-08-02 07:21본문
김상윤 고신대 전 부총장
요즘 우리나라도 진영논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갈수록 사람들이 자기 생각은 반납하고 손쉬운 진영논리에 갖다 바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각할 힘마저 잃어가고 있으니 큰일이다. 순진한 어린 학생들도 학교에서 사고할 힘을 기르는 대신 손쉬운 진영논리에 노출되어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존 듀이는 ‘인간성과 행위’라는 책에서 개를 죽이는 간단한 방법은 개의 목에 ‘맞아 죽을 개’라는 이름표를 달아주면 된다고 했다.
요즘 공적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기가 무섭다. 개념이 없는 사람이 내 말의 속뜻을 오해하여 싸우려 들면 당할 도리가 없다. 예수님께서도 이 진영논리 때문에 설교에서 개념을 피하고 이미지를 사용하셨다. 개념을 사용하는 순간 그것이 이름표가 달린 목걸이가 되고 이 애꿎은 표적을 향해 적개심이 담긴 돌들이 일제히 날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진영논리를 극복하시기 위해 수많은 설교를 하셨다. 그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와 같은 위대한 가르침을 남겼다.
이 가르침은 현대 서구 문화에서 인문학이라는 꽃으로 피어났다. 원래 진영논리는 그리스 철학에서도 존재했다. 플라톤이 본질이라는 이데아만 강조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존이라는 세상을 강조했다. 이때만 해도 ‘진’과 ‘선’의 진영만 있고 다른 가치는 무시되었다. 플라톤은 ‘미’를 타락의 첩경이라고 봤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 ‘미’가 예수님의 극적인 가르침에 힘을 얻어 진영논리를 해결해보려고 나선 사람 중에 내가 좋아하는 독일의 미학자 프리드리히 실러가 있다.
신학 반대말은 무엇인가? 인간학? 그러면 또 진영논리가 된다. 그래서 인간학 대신 인문학이라고 부른다. 인문학은 이런 점에서 중재자이면서 둘을 성숙시키는 역할을 한다. 인문학을 대학 교양과목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로버트 허친스의 생각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교양과목을 영어로 자유(Liberty) 즉, ‘Liberal Arts’라고 불렀다. 이 말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위대한 명언을 외워선 안 된다. 그 명언을 내 힘으로 길러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진영논리의 덫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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